내 첫경험은 엄마였다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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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경험은 엄마였다 (47)

냑냑이 0 2 0 0

오열하는 엄마곁에 안젤라쌤이 다가가 다독여줬고.

입술을 깨무며 어쩔줄 몰라하는 간호사,

나는 모르겠다는 듯 뒷걸음질로 문을 열고 나가는 정음이모.

나도 함께 분에 찼지만

바르르 떨리는 그 작아보이는 어깨를 바라보며

자리를 지키는 것 말곤 해줄 수 있는게 없었어...

 

남자친구 말로는 얼른 잊으라고 그랬었대.

내 생각엔 아무래도 여섯배가 넘게 차이나는

장례비 때문에 그랬었던 것 같지만...

 

병원측의 잘못도 있었어. 엄마가 수술중이지만

전날이라도 의사결정을 확인해야 했는데

 

마침 오전이면 단체 화장이 종료되니까.

 

그리고 개인장 했다가 단체장으로 바꾸는 부부들도 워낙에 많대.

더구나 기록에 초산인 경우가 아닌 둘째부터의 유산은

거의 예외없는 단체장.

 

어쨌든 그렇게 마지막까지

아가 가는 순간도 뜻대로 못해준 엄마.

 

그렇게 계속 엄마는 정신에 금이 가고 있었어.

 

 

장례는 엄마의 척수마취가 완료된 다음날.

 

장씨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어.

참관인은 안젤라쌤. 어느 수녀님. 그리고 나.

그리고... 질리지도 않나 정음이모도 참석했어.

이가 갈렸지만 따질 기력도 없었고 그땐.

왜자꾸 기웃거렸을까 생각해보면 필리핀으로 튀어버린

정현이일 마무리로 입맞추러 그러는게 아니었을지.

 

엄마는 묘목앞에서 무릎을 꿇고 반시간가량 오열했고.

 

나는 훌쩍이는 엄마를 추스르고

나무의 아직 앙상한 가지에

이름모를 아가들과 함께 잠이든 아기 태명을 적은 이름표를 달고,

장례를 모두 마쳤어.

 

서로간에 불편했을 안젤라쌤과 정음이모도 자리를 떠났고,

몸이 성치 않은 엄만 하룰 더 입원하는게 맞는데,

그날 오후에 고집을 부려 퇴원.

 

돌아가는 차안.

엄만 창밖으로 쓸쓸히 남겨진 작은 나무가 멀어지자 

다시 길게 오열.

 

한참 뒤가 되서야 안정을 찾을 수 있었어.

 

남자친구 안 서운해? 오지도 않았는데?”

일부러 쿡 찔렀지. 밉지않냐, 헤어지란 못된맘으로.

 

이제 서울서 내려온대......나도 지금은 안보는게 마음 편해.

그사람 소중한걸 잃어버리고 혼나는 느낌일거 같애

 

? 또 아기가지면 되지

 

나도 혹시나 물어봤어. 근데 이젠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한대

 

내 말에 엄만 실없이 웃으며 그렇게 오빠랑 노력했는데도

몇 년이나 걸렸고 BMI 수치?란 것도 많이 높았다고,

더구나 태중에도 높은 장애수치로

가슴앓이 하고 있었다며 속사정을 털어놨어.

 

그만해~ 엄마도 겨우 맘 내려놨는데 자꾸 .... 자꾸 .... 그러지마

 

여태까지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쾌활한척 엄마는

아주 작은 내 말실수에 말을 잇지 못하고 또 울먹이다

두손으로 얼굴을 가렸어.

 

......내가 있잖아 엄마 아들 ... 뭐 이상한 짓도 잠깐

그...한두..번 했지만

... 야 ㅋㅋ 너 너 웃기지 마아

 

이상한 짓이란 말에 쑥쓰러운 감정이 들었는지 얼굴이 빨개지며

울다 다시 웃는 엄마.

 

그래... 내가 자식이 없는것도. 남편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내가 욕심이 많다.”

 

다시 풀이 죽네.

내 엄마지만 동시에 가련한 여자.

풍요의 지금 시대에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좋은 사람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은 가정을 이루었을까.

 

엄마와 장씨아저씬 얼마 후 영영 해어졌어.

 

그리고 이때가 엄마의 제정신의 모습을 본

거의 마지막 즈음 이었어.

   


집에 돌아온 엄만

하혈과 함께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어,

무시무시하게.

 

 

ps) 언젠가 엄마와 여행중 어느 추어탕집에 갔는데,

뭐 옛날 남친 장씨가 소개시켜줬었다며.

 

난 추어탕 같은건 잘 먹지도 않아 툴툴거렸지만

진짜 맛있다해서 결국 먹어봤는데 진심 맛있는거야.

 

사람은 미워도 음식은 죄가 없으니.

 

(장씨는 결국 어느 피아노학원 선생과 결혼했거든)

 

난 의외의 맛집발견에 흥분해서 방정을 떨었지.

 

엄마 이거 진짜 맛있다. 인생 추어탕 발견!

“..........”

 

엄마는 답은 않고 조용히 한술에 떠있는 국물만 처다보다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씀하시더라구.

 

“...그땐 더 맛있었는데...”

 

축처진 엄마 속눈썹에 공기가 무거워져

 

주인이 바뀌었나보지...”

하며 애둘러 말하곤 마저먹고 나왔어.

 

돌아오는 길.

 

말없이 붉은 석양이 지는 창밖을 보던 엄마 옆얼굴을 봤었어.

 

어쩌면, 잘만 됐으면,

엄마는 무사히 재혼을 하고, 둘째를 낳고.

꿈에 그리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그런 상상을 하고 있으셨겠지. 아마도.

덩달아 속상하더라.

 


돌아온 엄마는 며칠째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난 학교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

겁이났어

뭐가 잘못됬나. 해열제도 먹히지 않아.

 

결국 내과에 가서 진료를 봤는데 또 다시 산부인과로.

 

원인은 오로 제거로 긁힌 상처가 원인이 된 자궁 근종(종양) 발견.

 

더 나쁜 소식은 그 치료를 위해 검사중 또 발견된

난소낭종이라는 놈이야.

   

엄마 나이도 있고 장성한 아들이 곁에 있어서였을까?

나도 곁에서 똑똑히 들었어.

담당의의 아무렇지도 않은, 무정한 목소리.

 

...왼쪽 난소를 들어내야 겠는데요?”

 

멍 하니 있다가 어렵게 엄마가 입을 열었어.

그렇게 되면 임신은 그럼 힘들지 않는지.

 

엄마의 간절한 말에 날보곤 허허 웃으며

어머님이 욕심이 많으시네 하더라.

아저씨야. 속도모르고 그런말 하는게 아냐.

 

오히려 이런 경우 반대쪽 난소도 같이 제거해달라는 분도

많으시다며, 엄만 자궁내 물혹 때문이라도,

40대 중반에 곧 들어서는 나이를 봐서라도 어렵다고 봐야죠.

그렇게 잔인한 현실을 듣게 되었지.


엄마 얼굴이 창백해졌어.

그때까진 차에서 말은 그렇게 했어도

장씨와 아기를 갖고 가정을 이루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었나봐.

 

끝까지 회복은 힘드냐고 상담을 했지만, 절래절래.

고민은 길지 않았어,

결국 한쪽 난소를 제거하기로.

   

소은이에겐 우선 다른 조에 들어가서 과제 하라고 했고

교수님에게는 조심스럽게 엄마수술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감사하게도 효자?라며 사정을 봐주시더라고.

 

바로 입원했고. 수술도 마쳤어.

 

회복하느라 입원중인 그때,

아니 그제서야 엄마 남친, 장씨 아저씨가 나타났어.

 

정말 오랜만. 아니. 솔직히 말해 질투가 나서

내가 피한게 맞긴 한데, 

내가 기억하던 모습보단 좀 세월이 지났지만

더욱 아재스러워 진 기름진 얼굴수염투성이에 허름한 복장

하지만 탄탄한 통나무같은 몸.

거기에 어울리지 않게도 꽃바구니를 들고 있었고.

그건 밉지 않더라

이런 촌스런 아재에게 이런 센스는 있었네.

 

유산과 수술의 반복에 지쳐있던 엄마의 얼굴이 장씨가 들고 있던

꽃바구니를 보곤 금새 밝아지며 아저씰 반겼어.

하지만 답이 없는 장씨 아저씨.

 

난 까딱 인사만 하고 1인실이기도 하니 자리를 비켜줄 수 밖에.

 

조용하다가 고성이 오가고 다시 침묵의 반복.

한 시간 쯤 지나서야 굳은 얼굴의 아저씨가 나가고

다시 내가 안으로 들어갔을땐 엄마 얼굴은

바사삭 부서질 듯 얇게 굳어있었어.

 

그날 헤어지지는 않았어.

하지만 좋지 않은 대화가 오갔음에는 분명해.

 

소중한 장기 하나를 떼어낸 엄만 퇴원 후

거의 집안에만 틀어박혔어.

 

아가도 잃고, 미래를 약속했던 약혼자도 떠나고.

오히려 병실안이 엄마에겐 좋았을 듯 했는데,

 

병원에 나와선 마지막 숨통을 끊으려는 듯

 

쉴 새도 없이 끔찍한 일들만 기다리고 있었어.

 

그 작은 동네에,

 

유부녀, 여학생 윤간사건의 소문이 돌았어.

 

 

언제부터였을지 가늠도 안가.

어쩌면 엄마만, 나만 몰랐나.

 

결국 구석에 몰려 공포에 질린 쥐 두 마리 처럼

고립되서는 서로 엉켜붙었나봐.


마지막이라는 약속은 금방, 쉽게도 깨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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